1. 시작하는 말

유대인 전통에서는 이 세상을 유지하는 기둥이 세 개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Torah(토라) 즉 모세오경(성경)을 말하며, 두 번째는 Avodah(아보다) 즉 경신례(전례, 기도)를 말하며, 세 번째는 자비의 업적들, 자선을 말한다. 이 세 기둥은 어느 하나도 소홀해서는 안 되며, 만일 하나라도 없거나  서로 균형이 맞지 않아도 바른 세상을 이룰 수 없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Torah인 말씀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데, 경신례나 자선이 말씀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이러한 지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해당된다. 성경 말씀, 전례와 성사생활과 기도 그리고 자선과 애덕실천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끌어 가는 세 기둥이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을 읽지 않고 읽으려는 마음도 갖지 않는 신자를 올바른 신자라고 할 수 없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성경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끌어 가는 기본이 된다. 또한 주일 미사에 참례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실천하려고 애쓰지도 않는 신자 역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기 어렵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첫째 계명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생활에서 기도(전례기도와 개인기도)와 일(일은 사랑 실천의 표현이다. 특히 수도자인 우리에게 하느님 사랑과 형제 사랑은 일을 통하여 표현된다)과 Lectio Divina가 하루의 구성요소가 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어느 것도 소홀해서는 안 되지만 그 중에서도 기도와 일의 기초가 되는 것은 말씀, Lectio Divina이다. 베네딕도 성인에게 있어서 Lectio Divina는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그저 베네딕도회 수도자로서 살아가는 삶의 내용이었다.



2. Lectio Divina란 무엇인가?     


1) 용어 설명

    Lectio Divina를 말 그대로 번역하면 `신적(神的) 독서'라고 할 수 있는데 베네딕도 규칙 48장에는 `성독(聖讀)'이라고 번역하였다.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는 대부분 `거룩한 독서'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그렇게 부르는 것이 무난할 것 같다. 거룩한 독서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영적 독서와는 다르기 때문에 적어도 영적 독서와는 구별해서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2) 거룩한 독서의 대상

   거룩한 독서의 우선적인 대상은 성경 말씀이다. 이 세상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지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열려 있는 하나의 거룩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하게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하느님 말씀은 성경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이 좁은 의미, 즉 성경 말씀에 대한 거룩한 독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3) 거룩한 독서의 정의

   거룩한 독서에 대한 교회의 공적 개념은 교황청 성서위원회가 반포한 다음의 글에서 살펴볼 수 있다: 거룩한 독서는 어느 정도 길이가 있는 성경의 단락을 두고 하는 개인적 혹은 공동체적인 독서법이다. 성경의 이 단락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영접되고 또한 성령의 작용하에 독서, 묵상, 기도 그리고 관상 등의 과정을 통해 기도로 전개된다.


   그 외의 자료들에서는 거룩한 독서를 `기도 안에 읽는 말씀' 또는 `말씀으로 기도하기',
`성령과 함께 읽는 말씀', `말씀을 마음으로 읽고 마음 안에 간직하기', `하느님의 말씀 안에 동화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1>거룩한 독서는 무엇보다도 '기도 안에 읽는 말씀'  또는 '말씀으로 기도하기'이다.

   거룩한 독서에는 반드시 기도가 동반된다. 기도가 하느님과의 대화이며 만남이라면, 거룩한 독서는 성경 말씀 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거룩한 독서는 성경에 대한 개념적이고 지적인 이해를 뛰어넘어 말씀 안의 하느님과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이루어지도록 성경을 읽는 것이다.


2>거룩한 독서는 말씀을 성령과 함께 읽는 것이다. 

   인간을 도구로 하여 성령에 의해 쓰여진 성경 말씀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바로 이해될 수 없다. 그래서 성령의 도움을 청하며 성령 안에서 읽어야 한다. 성령께서는 성경 말씀으로 하여금 그것을 읽는 사람 안에 살아 있는 하느님의 말씀이 되도록 한다.


3>거룩한 독서는 말씀을 마음으로 읽고 마음 안에 간직하는 것이다.

   거룩한 독서는 말씀을 마음으로 읽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성과 감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성과 감성도 거룩한 독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것이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간직되지 않을 때는 거룩한 독서를 했다고 할 수 없다. 이렇게 하여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물고 우리가 말씀 안에 머물며,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게 된다.

   말씀 안에 머물수록 우리는 더욱 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될 것이고, 말씀은 우리를 두려움과 상처 그리고 죄와 약함에서 자유롭게 할 것이다. 성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머물게 하시오'(골로 3,16)라고 하며, 성 요한은 `여러분은 강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1 요한 2,14)라고 한다.


4>거룩한 독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먹는 것이며 말씀과 동화되는 것이다.

   마음 안에 새겨지고 간직된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살아있는 빵이 되고 우리의 몸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이끄는 힘이 된다. 성경은 `너는 이 책을 받아 먹으라'(에제 3,1-3)고 하며 말씀의 힘과 감미로움을 노래한다. 말씀을 읽고, 먹고, 소화시키는 사람은 말씀 안에서 감미로움을 맛본다. 예레미아 예언자는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 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나이다.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하겠나이다'(예레 15,16; 20,9)라고 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먹는 사람, 감미로움을 맛본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고는 못 배기며 말로나 행동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게 된다.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육적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음식을 먹듯이 영적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말씀이 필요하다. 말씀을 먹지 않으면 영적 생명은 죽어버리고 만다. 오늘 나는 참으로 거룩한 말씀을 배부르게 받아 먹었는지, 굶어죽지 않으려면 하루하루 확인해 보아야 한다. 성경에도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했다.

   `우리는 말씀에 배고파 하는가? 영적으로 목이 마른가?'라는 질문은 참으로 중요하다. 배가 고파야 먹고 싶고, 먹게 된다. 성 요한은 `배고픔을 느끼는 것이 건강한 몸의 상징이듯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자 배고파 하는 것은 영적으로 건강하다는 확실한 증거"라고 했다.


4) 거룩한 독서의 출발과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이다.

   우리는 말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에 대해 말해 주며,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따라서 너무 주관적인 이해는 피해야 한다. 복음 말씀에 대한 이해는 복음적이어야 하고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성경 안에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알아챌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지금, 여기에서의 '나'를 위한 말씀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5) 거룩한 독서의 모범은 성모 마리아이시다.

   성모님은 말씀을 듣고, 말씀에 순명하고, 말씀을 태중에 품으셨으며, 세상에 말씀을 낳아 주셨다. 또한 예수님께 대한 놀라운 예언의 말씀을 들었을 때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에도 늘 마음에 깊이 간직하고 계셨다. 마니피캇은 성모님 자신이 구약성경에 대해 거룩한 독서를 하셨다는 것과 말씀을 외우고 계셨음을 보여 준다.


6) 거룩한 독서는 일종의 수행이다.

   거룩한 독서를 생활화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거룩한 독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인간의 노력도 필요하므로 지성과 마음과 시간을 들이는 애씀이 요구된다.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을 따로 떼어놓고 규칙적으로 하면 좋다. 미사나 시간전례처럼 꼭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가능한 일일 것이다.


 

3. 거룩한 독서의 역사

        

1) 거룩한 독서는 유대교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들은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하느님의 말씀에 맛들이라고 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에 맛들이면 말씀이 그 사람을 순화시키고 선에 진보하도록 이끌어 준다. 랍비들과 그 제자들은 정신과 마음에 거룩한 말씀을 박아 넣으려고 벌이 꿀을 빨아먹을 때처럼 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고 한다.


2) 거룩한 독서의 원형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안에서 찾아 볼 수 있다(출애 24; 신명기 6,4-9; 여호수아 24; 열왕 하 23; 느헤미아 8장; 루가 4,16-21; 24,13-35).


3)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문헌을 보면, 거룩한 독서는 성경에 있는 하느님의 말씀에 주의를 집중하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뜻했다. 거룩한 독서는 정신과 마음, 자기 전존재로 말씀에 몰두하는 것이다.

                

4) 2-3세기의 오리게네스(185-250)는 처음으로 그리스어 테이아 아나그노시스 즉,  Lectio Divina(라틴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그는 거룩한 독서를, 하느님께 대한 모든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자 모든 그리스도인의 수덕생활과 관상의 기초라고 보았다.

   그는 성경을 유익하게 읽기 위해서는 주의력 집중과 끈기있는 노력 그리고 순수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신적인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하다. 성경을 읽는 것이 수덕생활의 기초가 되지만 그 반대로 수덕적인 생활이 없는 거룩한 독서는 불가능하다.

   오리게네스는 `그대가 집에 있거나 광장이나 극장에 있을 때에도 말씀에 봉사한다면 그대는 지성소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의심하지 말 것입니다'(레위기 강론집 XIII,4)라고 하였다.


5) 거룩한 독서는 3세기 말과 4세기 초에 일어난 수도승 운동에서 계속 실천되었으며, 바실리오와 예로니모는 오리게네스의 사상을 발전시켜 갔다. 이들은 누군가 성경에서 이익을 얻으려면 그 안에 머물면서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교부들의 성경 주석들은 모두 이 거룩한 독서의 열매들이다.

   이후로 거룩한 독서가 수도승들 사이에서 점점 더 열심히 실천되어 가면서 어느새 수도자들의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였다.

                

6) 회 수도생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빠꼬미오 성인이 쓴 규칙서는 수도규칙서로는 가장 오래된 것인데, 그 당시의 수도자들이 어떻게 성경 말씀과 함께 살았는지, 거룩한 독서를 어떻게 실천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규칙에 의하면, 빠꼬미오의 수도공동체에서는 모든 수도자들이 시편과 신약성경 전체를 외우고 있었다. 따라서 공동기도를 함께 할 수 있었고, 혼자서 그 말씀들을 되뇌일 수 있었으며, 걸을 때나 일 할 때나 늘 성경 구절을 되뇌었다. 이를 위해 빠꼬미오의 공동체에서는 입회하기 전에 일정한 양의 성경을 암기해야 했고, 문맹자를 허용하지 않았다. 하느님의 말씀은 수도자들의 영성생활의 바탕이었으므로 글을 모르는 사람은 글부터 배워야 했다. 그리고 모두가 성경 주석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장상들이 하는 성경 주석 강화가 매우 중요했고, 일주일에 다섯 번 장상의 성경 강화가 있었다. 빠꼬미오 자신은 성경 전체를 암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되풀이하여 되새기는 중에 그들의 마음 안에는 하루 종일 하느님의 말씀이 울려 퍼졌을 것이다.


7) 은수 수도생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안토니오 성인은 성경 말씀에서 부르심을 느꼈으며, 말씀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면서 수도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 수도승이 그에게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하자 그는, "그대가 무슨 일을 하든지, 무슨 말을 하든지 성경에 기초를 두고 하라"고 대답하였다.


8) 바실리오 성인은 4개의 수도규칙을 남겼는데, 그 중 첫 번째인 `윤리규정Moralia'은 1,542개의 신약성경 구절로 이루어졌다. 다른 규칙들도 수도자들이 성경 말씀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하면 성경 말씀으로 응답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성인에게 있어서 수도규칙과 수도생활은 성경 말씀을 말씀 그대로 철저히 사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다. 바실리오 성인은 성경을 만병통치약이라고 했다. 우리에게 만병통치약이 있지만 먹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9) 카시아노는 성경 독서야말로 신앙을 성숙시키고 더욱 더 순수한 기도를 하게 하는 도구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것이 바로 네가 온갖 수단과 방법을 써서 지향해야 할 바이니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전념하여 끊임없는 묵상이 네 영을 적시도록 하라. 그리하여 성경으로 하여금 네 자신을 성경과 닮은 모습으로 변화시키도록 하라"(담화집 XIV.10)고 한다. 모든 영적 진보는 성경 독서와 묵상에서 나온다.

   성경 말씀을 참으로 깨닫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마음의 겸손과 순결을 얻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순결하지 못한 영혼은 성경을 읽는 것이 허영과 자만의 동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카시아노는 세상의 모든 염려를 멀리하고 성경을 자주 끊임없이 접하며, 끊이지 않는 묵상으로 말씀이 영혼 안에 스며들어 말씀에 의한 어떤 상이 형성되도록 하라고 권고한다. 이러한 독서는 영혼 안에 새로운 `계약의 궤'를 만들어 영혼 깊숙이 숨겨진 보물을 항상 간직하게 할 것이다. 이 보물들은 나쁜 영을 거슬러 끊임없이 하느님의 선의를 발견하게 하며 마음의 평정을 얻게 할 것이다.   

  

10) 6세기 팔레스티나의 바르사누피오와 가자의 요한은 거룩한 독서의 폭을 넓혀서 수도 성인들의 생애와 여러 성경 주석가들의 작품들까지 거룩한 독서의 대상에 포함시켰다.


11) 거룩한 독서는 11세기와 12세기까지 보편적으로 실천되었고, 카르투시오 수도회의 아빠스였던 귀고 2세(+1188)는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실행해 오던 거룩한 독서를 네 단계로 체계화하여 글로 남겼다.

        

귀고 2세의 거룩한 독서의 4단계

귀고 2세는 영적 생활의 네 단계 - 독서 lectio, 묵상meditatio, 기도 oratio, 관상 contemplatio - 에 대하여 정리하면서 수도승들은 이 네 단계를 거쳐 땅으로부터 하늘로 들어 올려지게 된다고 말하였다.


1.독서 : 독서는 본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 성경을 주의깊게 살피는 것이고, 그 말씀에 친숙해질 수 있도록 말씀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것이다. 음식에 비유하면 단단한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 입에 넣는 것이다.


2.묵상 : 묵상은 본문이 나에게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다. 이 때는 지성과 마음을 사용하여 본문 속에 감추어진 신앙의 진리를 찾는다. 또한 하느님께서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인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다. 묵상은 단단한 음식을 먹고 씹어서 가루로 만드는 것, 소화 시키는 것과 같다.


3.기도 : 기도는 묵상을 통하여 알아들은 하느님의 뜻에 응답하거나 갈망을 청하는 것이다. 이는 음식을 삼켜서 맛을 보는 것과 같다.


4.관상 : 관상이란 영혼이 하느님께 이끌려 자기 자신을 넘어서 하느님께로 높이 들어 올려져 영원한 즐거움과 감미로움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써만 가능하게 된다. 이제 영혼은 하느님이 세상을 보시듯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며, 새로운 방식으로 행동하게 된다. 이 때에 영혼은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음을 느끼고, 하느님과의 일치를 느끼며, 영원한 감미로움을 맛보고, 기쁨과 새 힘을 얻는다.

        

   이 네 단계의 관계에서, 우리는 묵상 없는 독서는 건조하며, 독서 없는 묵상은 오류에 빠지기 쉽고, 묵상 없는 기도는 미지근하며, 기도 없는 묵상은 결실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열성적인 기도는 관상에 이르게 하며, 기도하지 않고 관상에 이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 단계들은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한 단계라도 없으면 유익이 적거나 전혀 없게 되며, 또 앞의 단계들이 없으면 뒤의 단계에 도달하기는 매우 어렵게 된다.      

 

12) 13-14세기부터 거룩한 독서가 사라지기 시작하는데, 성경을 성경 자체로서 하느님의 말씀이며 생명의 말씀으로 보기보다는 교리 신학적으로 읽게 되고, 스콜라 신학의 등장으로 '질문과 논증'의 방법이 도입되면서 논리를 앞세운 신학이 거룩한 독서를 대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3) 14-15세기에는 내적이고 심리적인 기도와 묵상 방법이 거룩한 독서를 대신하기 시작한다(Devotio Moderna 근대 신심주의 -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개인주의적인 신심운동으로서 대표적인 책은 '준주성범'이다).

        

14) 16세기에 들어서는 종교개혁(1517)의 영향으로 가톨릭 교회에서 평신도들이 성경을 마음대로 읽고 해석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1546년에 열린 트렌트 공의회에서는 성경을 자국어로 읽는 것을 금하게 되었다. 따라서 성경 독서는 점점 더 일반 신심서적을 읽는 `영적 독서'로 대치되었다. 그리고 전통적인 성경 독서 방법이 내적이고 감성적인 방법을 동원한 묵상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신자들의 허전한 마음에 성체신심, 성모신심, 성인공경 등의 신심이 일어나 거룩한 독서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 이후 오랫동안 성경은 라틴어와 그리스어, 히브리어를 아는 성직자들과 성경학자들만 읽을 수 있었고, 이러한 언어를 모르는 일반 신자들은 성경을 직접 읽지 못하고 교회의 해석에 의존해야만 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느님의 메시지를 듣고 응답하게 되며, 말씀은 각자를 고유한 방식으로 하느님께로 이끌어 간다. 그런데 이러한 통로가 끊어짐에 따라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 안에서 점점 그 힘을 잃어갔으며, 신자들 역시 말씀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던 내적 신앙의 확신을 잃게 되었다.


15)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는 가톨릭 교회의 전환점이 되어 하느님의 말씀을 다시 하느님 백성에게 되돌려 주었다. 교회는 모든 이가 자국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자주 읽고 묵상하기를 권장하였다. 이제 말씀은 교회 안에서 새롭게 살아나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성장시키며 생명을 불어 넣어줄 수 있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문헌 계시헌장 VI장


21항 교회는 주님의 성체와 함께 성경을 항상 존중하고 있으며... 교회의 모든 설교는 그리스도 자체와 마찬가지로 성경의 힘으로 자라고 지배를 받아야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성경 안에서 당신 자녀들을 언제나 친절히 만나 주시고 그들과 말씀을 나누신다.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를 지탱하는 힘이며, 신앙의 힘, 마음의 양식, 영성생활의 깨끗하고 마르지 않는 샘이 되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다(히브 4,12).


22항 그리스도교 신자에게 성경을 가까이 할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 교회는 자모적 배려로써 자국어로 적합하고 정확하게, 특별히 성경 원문에서 직역한 성경을 출판하도록 권장한다.


25항 그러므로 모든 성직자들, 즉 말씀의 직무를 이행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성경을 읽고 열심히 연구하여 성경과 친숙해져야 한다. 공의회는 또한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 특히 수도자들이 성경을 자주 읽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숭고한 지식'(필립 3,8)을 배우도록 각별히 또한 강력히 권하는 바이다. 사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을 읽을 때에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기도가 동반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26항 성체성사로부터 교회의 생명이 성장하듯이,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존경심이 높아짐으로써 영성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기대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가 성경에 쉽게 접근하도록 하면서, 성경이 그리스도의 몸처럼 중요하며 영적 진보를 위해서는 말씀이 꼭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 특히 수도자, 성직자들이 성경을 자주 읽어 하느님의 말씀이 영적 양식이 되고 살아 있는 힘이 되도록 권고하고 있다. 특히 기도와 함께 읽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지식이 깊어지기를 권하고 있다.


   바티칸 공의회의 권유로 교회 안에 성경 공부와 성경 모임이 많이 생겨났고, 한국교회에서도 이런 운동들이 일어나 교회는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초기 교회로부터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수도자들의 영성생활의 기초였던 거룩한 독서, 즉 기도 안에서 읽는 성경 읽기에 대해 다시 눈을 뜨게 되었고 그 소중함과 가치를 재인식하게 되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교 생활과 수도생활에 성경과 거룩한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거룩한 독서는 교회와 수도전통 안에서 초기 교부들과 수도자들의 영적 힘의 근원이었다. 거룩한 독서가 베네딕도회 수도자들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 의해서 보존되어 왔음은 사실이다. 동방과 서방의 초기 수도전통을 고스란히 전수받고 있는 베네딕도회가 이 전통을 살고 교회 안에 다시 살려, 우리 자신과 교회가 영적 활기를 되찾도록 할 의무가 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4. 거룩한 독서의 방법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각자에게 더 잘 맞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실제로 해 보면서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교회(수도) 전통 안에서 초대 교회로부터 교부들에 의해 실천되어 온 것과, 그동안 실제로 실천해 온 거룩한 독서의 방법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아래의 방법은 귀고 2세가 말한 거룩한 독서의 4단계에 기초를 둔다.


1) 준비기도

   준비 단계에서는 성경 말씀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마음을 비우고 분심을 제거하여, 마음이 기도의 상태가 되도록 이끌어간다. 준비가 충분히 되면 그 다음 단계에 쉽게 이를 수 있으므로 서두르지 말고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1> 외적인 준비

장소 : 성당이나 기도방 혹은 개인방이라도 좋다. 마음을 하느님께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곳이면 된다. 필요하다면 기도 분위기를 도울 수 있는 성물들을 준비해도 좋다.

자세 : 편안한 자세로 허리를 펴고 앉는다. 자신이 오랫동안 집중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하면 된다.

  눈을 감는 것이 집중하기에 좋지만 졸음이 올 수 있다. 졸릴 때에는 눈을 뜨고 눈 앞 3m 정도의 거리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성경 : 성경을 그리스도의 몸처럼 공경하면서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성경 본문은 미리 펴서 준비해 놓는다. 거룩한 독서를 위한 성경은 가능한 한 정확한 번역본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다른 외국어 번역본을 함께 읽어도 좋다). 현재까지 나온 한국어판 번역본으로는 신약성서는 200주년 성서, 구약성서는 새 번역을 가장 정확한 번역본으로 보며 공동번역본을 사용해도 된다.


2 >마음의 골방으로 들어가기

   마음의 고요와 침묵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자신을 직면할 수 있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하느님과 나만의 고독의 장소인 `내 마음의 골방'으로 들어가야 한다. 각자가 자신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겠지만 몇 가지 예를 들어 본다.


호흡을 크게 천천히 하면서 들이쉬고 내쉬는 것에 의식을 집중하고 마음을 모은다. 이 때에 숨을 내쉬면서 주님의 이름을 자유롭게 부르는 기도를 하고, 의식이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도록 하여 하느님께 집중하도록 한다.


좋아하는 화살기도를 호흡에 맞추어 되뇌이면서 의식을 밑으로 가라앉혀 하느님 앞에 모은다.


의식을 모아 숫자를 천천히 거꾸로 세어가면서 마음 속 깊이 내려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위층에서 한 층 한 층 아래로 내려가는 상상을 하면서 마음 깊은 곳으로 내려 갈 수 있다(10층, 9층, 8층...).


의식을 머리에서부터 이마, 눈, 코, 입, 목...등 점차 내 몸의 아래 부분으로 내려간다고 상상하면서, 내 몸의 가장 깊은 곳이라고 생각되는 곳까지 내려간다.

 

말씀을 되새김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기도의 상태로 들어간다.


공동으로 할 때에는 단순한 노래를 반복하면서(예: 떼제 노래 등) 고요하게 마음 깊이 내려간다.


3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며 신앙을 고백하기

   하느님은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골방에서 나와 개인적으로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계신다. 내 마음의 골방, 가장 중심, 맨 밑바닥까지 내려왔다고 느끼면 하느님께서 그곳에 함께 계심을 느끼면서 천천히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든지 또는 `하느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을 믿습니다'와 같은 단순한 기도를 드리고 신앙을 고백한다.


4> 성령을 청하기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다. 하느님께서 나의 눈과 귀와 지성과 마음의 문을 열어 주시고,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을 더 깊이 알고 사랑할 수 있는 빈 마음, 순수한 마음을 주시도록 겸손한 마음과 믿는 마음으로 성령께 기도한다. 자신의 모든 욕구, 성경에서 만족을 얻으려는 욕구조차 버리고 성령의 이끄심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


예: 주님, 당신 성령을 보내 주시어 제 눈과 귀를 열어 주시고 마음을 열어 주시며, 당신의 말씀을 알아듣고 마음 깊이 받아들여 그 말씀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이렇게 마음이 기도의 상태에 들어갔다고 생각되면 독서(lectio)를 시작한다. 준비기도를 했는데도 아직 마음이 기도의 상태에 들어와 있지 않고 분심이 들면 처음부터 다시 반복해도 된다.


2) 독서 lectio

   우리는 거룩한 독서를 할 때에 이 부분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경우에 이미 다 아는 성경 말씀이라고 생각하면서 적당히 읽고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가지고 묵상에 들어간다. 그러나 거룩한 독서를 잘 하기 위해서는 독서를 잘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귀고 2세는 독서가 없는 묵상은 오류에 빠지기 쉽다고 했다.

   성경을 읽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 본문을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정확하게 읽는 것이다. 내가 듣고 싶은 것을 듣는 것이 아니라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을 들어야 하며, 본문이 그 자체로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본문의 총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면 좋다. 하느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알아듣는 것은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다. 아를르의 체사리오 성인은 ꡐ말씀을 주의깊게 경청하지 못하는 사람은 주님의 성체를 함부로 땅에 흘리는 것만큼이나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다.

   세밀한 독서는 성경 본문이 본문 스스로 말하는 것을 도와 준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독서에 충분한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것도 기도의 일부이다.


1> 앞 단계에서 준비된 기도의 상태에서 성경 말씀을 천천히 주의깊게 읽는다. 읽고자 하는 본문 전체를 적어도 두세 번 정도 읽어 전체의 뜻을 파악한다.


2> 본문이 성경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본문의 앞 뒤 단락을 살핀다.


3> 공관복음의 병행구를 찾아 보면서 공통점과 다른 점을 비교하고, 본문의 숨은 의미나 특별히 이 복음사가가 강조하는 점에 집중하면서 본문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는다.


4> 성경의 각주를 찾아 본다.

구약을 읽는다면, 예수님께서는 이 문장으로 어떤 기도를 하셨는지, 구약의 예언이 신약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살펴본다. 또는 단순하게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신약을 읽는다면, 이 문장이 빠스카 신비의 빛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살펴본다.


5> 본문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다른 성경 번역본과 비교해 봐도 좋다.


6> 그 다음, 본문에 대한 세밀한 독서(관찰)를 한다. 단어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천천히 세밀하게 다시 읽으면서 본문의 전체적인 내용과 구성을 살핀다. 장면을 구별해 보고, 부분 독서를 통해 부분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 관찰하며, 더 작은 부분으로 나눠 본다. 이 때에는 본문에 나오는 사건(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공간, 시간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들의 변화를 살핀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6하원칙에 준해서 읽어도 좋다.

   전체와 부분에서 전체적인 줄거리, 주제, 의미를 찾는다. 대부분의 경우 반복되는 구절이나 단어는 중요한 의미가 있으므로 주의를 기울인다.


7> 본문 속의 주제어 또는 의미있는 어휘를 성경의 다른 곳에서 찾거나 기억해 보고 그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찾는다(예: 샘 - 베짜타 못가, 사마리아 여인, 생명의 샘...).


8> 교회의 교부들이나 정통 성경학자들의 성경 주석을 읽어볼 수도 있다. 성경에 대한 주석과 공부는 우리를 더욱 풍요로운 독서로 이끌어 준다. 그러나 이것이 지적이고 학문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주석이나 다른 글들을 참고로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본문에 대한 세밀한 독서이다.


9> 빠꼬미오 성인은 집중이 잘 안 되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어려울 때에는 성경의 한 구절을 끊임없이 되새겨 보라고 권고했다. 그러면 분심이 점차 제거되는 것을 느끼고 그 내용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성경의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을 때에는 필사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한 환경이 가능하다면 소리를 내어 읽거나, 6하원칙에 따라 분석한 것을 적어보는 것도 좋고, 성경 본문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해 볼 수도 있다.

   세밀한 독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묵상으로 넘어가기 위한 한 과정이다. 독서가 바르게 될 때 묵상도 기도도 관상도 바르게 된다. 세밀한 독서 역시 기도이므로 충분한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지만 세밀한 독서에서 끝내면 안 된다.


3) 묵상 meditatio


   묵상 때에는 지성과 마음을 사용하여 말씀 안에 감추어진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서는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신앙이 전제되며, 이런 시선으로 말씀을 바라보아야 하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을 발견해야 한다. 영적 의미, 중심이 되는 메시지 다시 말해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과 긴밀히 연결되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1> 성경은 무엇보다도 영원한 생명과 구원에 대한 기쁜 소식이다. 따라서 이 본문에 어떤 복음과 어떤 믿음이 들어 있는지, 신앙의 어떤 면을 말하고 있는지를 숙고한다.


2> 성경은 성경 저자가 체험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공동체가 체험한 믿음을 증거하고 표현하기 위해 쓰였다. 그러므로 본문의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사건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찾는다. 거룩한 독서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이다. 따라서 모든 말씀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읽어야 한다.


3> 또한 본문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기쁜 소식을 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닮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찾는다. 즉 본문을 나의 삶과 연결시키면서 하느님과의 대화에 들어간다. 이 본문에서 예수님은 어떤 가치를 표현하시고 나는 그것을 어떻게 내 것으로 삼을 수 있는지, 나와 유사한 상황이 존재하는지, 나의 삶에서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성경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쓰였기 때문에 각자의 눈 높이에서 각자에게 건네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다.

   본문을 되풀이해서 읽고 그것에 조명을 받으면서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의미를 발견할 때까지 되새기는 것도 좋은 묵상 방법이다. 마리아가 어떤 사건에 부딪칠 때마다 마음 속에 깊이 간직했듯이(루가 2,19.51)...


4> 성경 전체는 서로서로 연결된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라는 말은 교부들이 성경을 읽을 때 기억하던 기본 원리 중의 하나였다. 그러므로 묵상할 때에는 성경 전체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성경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기억을 총동원한다.

   미드라쉬(midrash)는 유대 랍비의 전통에서 사용하던 주석학의 한 기법으로서, 한 본문에서 출발하여 그와 관련되는 다른 문장을 그리고 성경의 다른 장면들을 기억하고 연결시키면서 성경의 의미를 찾아가는 방법이다. 유대 전통 뿐만 아니라 교부들의 주석학에서도 이런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미드라쉬는 히브리말로 다라쉬(darash)에서 파생된 표현으로 '탐색하다, 질문하다, 상담하다' 등의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미드라쉬적 기능은 거룩한 텍스트를 눈앞에 두고 탐색하면서 의문을 품고 질문하고 기억하고 연상하여 비교하는 방법이다.

   교부들의 성경 해설들은 거룩한 독서의 열매들이므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교부들은 미드라쉬적 성경 해설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말씀기도의 제 2독서중 많은 부분이 교부들의 성경해설들이다).


4) 되새김 ruminatio


1> 말씀을 알아듣고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는데 있어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되새김(反芻, ruminatio)이다. 이것은 소나 양처럼 말씀을 자꾸 되씹으면서 맛을 보고 완전히 소화시켜 말씀의 어느 부분이라도 좋은 영양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성경 말씀이 뱃속으로 들어가고 가슴 속으로 들어가 우리는 성경 말씀에 맛들이게 되고, 이 말씀이 영양분이 되어 우리의 삶을 움직이게 한다.


2> 되새길 문장을 선택할 때에는 더 많은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구절보다는 본문의 중심이 되는 메시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과 더 긴밀히 연결되는 메시지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영적 의미를 찾으면서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궁구하며 되새김을 한다.       


3>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도록 말씀을 마음 속으로 중얼거림과 동시에 말씀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생각과 감정과 기억을 주의깊게 이끌어간다. 그리고 말씀이 온 몸을 돌아 말씀의 의미가 머리로 깨달아지고 마음으로 느껴져, 온 몸을 가득 채우고 가슴에 새겨지도록 되새김을 한다. 이처럼 되새김은 온 몸으로 하는 것이며, 그 자체가 끊임없는 기도가 된다. 중세 때에는 묵상은 곧 되새김을 뜻하였다.


4> 되새김은 수도승 전통 안에서 매우 중요한 수행 중의 하나였다.


마카리오 성인은 되새김하는 양과 같이 성경 말씀을 계속 되씹음으로써 음식의 달콤한 맛을 보게 되고, 마침내 그 음식을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 집어 넣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예로니모 성인은 끊임없는 독서와 반복되는 묵상을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서고'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빠꼬미오 성인은 수도승들이 신약성경과 시편을 암기하여 일을 하거나 걸어다니거나 항상 말씀을 되새김하여야 한다고 했다.


니느웨의 이사악 성인은 `묵상 중에 말씀은 입 안에서 특별한 맛을 낸다. 같은 말을 싫증 내지 않고 끝도 없이 반복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묵상은 되새김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말씀이 삶으로 들어오고, 기도의 도구가 되게 하며, 그 말씀에 맛들이게 된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우리가 매일 빵을 먹듯이 언제라도 하느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고 하면서, 일하는 중에도 시편을 낭송하고 되새김을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성인은 식사 전 제 6시부터 제 9시까지 하루 중 세 시간, 그것도 집중하기 가장 좋은 시간을 거룩한 독서에 전념하라고 한다. 여기에서 빠꼬미오나 바실리오, 예로니모와 카시아노에게는 나오지 않는 하나의 규율이 생겼는데, 수도승들의 하루 일과중 독서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베네딕도 규칙에도 영향을 주었다.


카시아노도 수도승은 일하는 중에도 성경 본문을 되새김해야 한다고 했다(제도서 4,12).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의 많은 부분을 외우고 그것들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성경 독서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는 동안은 나쁜 생각들이 우리의 영혼을 차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어떤 부분을 아무리 반복하여 외워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는데, 침묵 중에, 특히 밤 동안에 복잡한 일상의 일에서 떠나 이 성경구절을 다시 기억하여 되새김할 때 성경 속에 숨겨져 있는 매우 아름다운 의미를 깨닫게 될 수도 있다.

말씀의 되새김을 통하여 우리는 계약의 궤를 우리 안에 간직하게 될 것이며, 살아있는 `계약의 궤', 살아있고 걸어다니는 '하느님의 말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체사리오는 동정녀들을 위한 규칙서에서, 식당이나 일터에서 듣는 공동 독서가 끝나더라도 마음에서는 되새김이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베네딕도 성인 역시 되새김을 말하고 있으나 일하는 중이 아니라 독서 시간에  하는 되새김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정해진 시간에 거룩한 독서를 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고대 수도승들에게 일은 기도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베네딕도 성인은 일은 기도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일 자체도 중요하게 여기면서, 일정한 시간 동안 일에 대한 근심 없이 온전히 자유롭게 거룩한 독서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처럼 독서와 일의 시간을 구분하게 된 것은, 공동체가 커지고 일이 많아져 `기도를 위한 일'이라는 개념이 점차 약해지고 거룩한 독서 시간을 갖지 않고 기도나 되새김을 하면서 일을 한다면, 되새김과 기도 둘 다 소홀해질 것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드 보궤 신부는 일하면서 하는 되새김이 베네딕도 규칙에 분명하게 나오지 않는 것을 애석해 하면서, 되새김은 생활 한가운데에 말씀을 현존하게 하기 때문에 독서에 없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는 독서는 끊임없는 되새김을 통하여 기도의 결실을 맺기 때문에 되새김이 없다면, 독서의 연장도 계속적인 기도의 뒷받침도 없게 되어 수도자의 하루는 불완전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되새김이야말로 수도자의 일상을 이루는 근본 요소라고 할 만하다.


12세기의 성 안셀모는 독서자는 구원자이신 주님의 선(善)을 맛보아야 하고, 그분의 말씀을 되씹어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되새김은 수도승 전통에서 매우 중요한 수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은 거의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러끌레르 신부는, 말씀의 끊임없는 반복과 되새김의 수행이 수도승들의 내면생활을 보다 더 진보시킬 것이라고 한다.


5> 되새김은 거룩한 독서의 과정 중 어느 부분에 들어가야 하는가?


되새김은 거룩한 독서의 전 과정에 필요하다.


준비: 준비 과정에서는 좋아하는 화살기도나 바로 전에 되새김하던 말씀을 되새김하면서 기도의 상태로 들어가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독서: 독서 때에 본문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문장을 되새길 필요가 있는데, 이 때에는 되새김을 통해 말씀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알아듣게 된다.


묵상: 묵상 중에 되새김을 하다 보면 되새기는 말씀의 의미를 더 깊이 알게 되고, 말씀이 내게 주는 의미를 깨달을 수도 있다.


기도: 깨닫게 된 말씀의 뜻을 내 안에 새기고 더 깊이 기도하기 위해서도 되새김이  필요하다. 묵상 중에 하는 되새김으로 기도하고 싶은 갈망이 생기게 된다.


관상: 기도 중에 되새김을 함으로써 말씀과 동화되어 하느님과의 일치에 머물 수 있게 되고, 관상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실천: 되새김을 통해 말씀의 실천이 가능하게 된다.


  이처럼 되새김은 준비, 독서, 묵상, 기도, 관상, 실천 전체를 통해 꼭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다.


6> 말씀을 되새기는 동안에 다음과 같은 열매를 얻을 수 있다.

되새기고 있는 말씀 자체가 살아있는 말씀이 되어 힘있게 우리 마음 안에 새겨지고, 내 안에 평화를 주며 나를 양육하고 변화시킨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구원사업과 하느님의 사랑과 믿음에 대한 깊은 확신을 체험하게 된다

(예: 나를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되새기고 있는 말씀이 나의 현재 상황에 적용되어, 현재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하느님의 말씀의 빛으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말씀하시는 내용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청하며 실천하게 한다

(예: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


되새기고 있는 말씀이 나의 고질적인 나쁜 습관과 상처들을 비추어 드러나게 하며, 그것들에서 해방될 힘을 얻게 한다(예: 낫고 싶습니까? 내 병이 무엇이지?). 이런 일이 짧은 순간에 일어날 수도 있고, 일하거나 산책하면서 말씀을 되새기는 중에 일어날 수도 있으며, 열매가 있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거룩한 독서에서 특별한 노력과 훈련이 필요한 수행 부분은 독서와 되새김 단계이다.


5) 기도 oratio / collatio


   기도는 주님과 만나고 대화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독서와 묵상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당신을 내어 주시며, 나는 기도로써 이에 응답드리고 나를 그분께 내어 드린다.

   기도 때에는 독서와 묵상 중에 또 말씀을 되새기면서 알아듣게 된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말씀이 권하는 권유와 회개, 용서에 대한 부르심에 응답을 드린다. 그리고 이웃을 위해 청원하고,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청하게 된다.

   거룩한 독서에서의 기도는, 그 내용을 성경으로부터 얻어내어 하느님 자신의 말씀으로 하느님께 말씀드리게 되므로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를 할 수 있게 된다.

   세밀한 독서를 하는 도중이나 묵상 때에, 혹은 되새김을 하는 중에도 기도할 수 있다. 기도 때에 감흥이 일어나 눈물이 날 때에는 감사로이 받아들이고 굳이 억누르거나 거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것을 마치 기도의 목적인 것처럼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6) 관상  contemplatio


  거룩한 독서의 최종 목표는 관상이다. 이는 말씀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일치하는 것이다. 관상은 거룩한 독서로부터 얻어지는 자연스러운 결실이지만 단지 은총으로써만 주어진다.

   이제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는 말씀 안에 머물게 된다. 이 때에는 어떤 의식도 없고 그리스도의 얼굴만이 우리 앞에 드러나며, 그분과의 일치 안에서 하느님의 빛이 우리를 환히 비추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몸은 우리가 관상하는 분의 모상을 따라 변모되고 그분과 하나가 된다. 그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미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제 우리는 이 세상을 하느님의 빛으로,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어 어디에서든지 하느님을 발견하게 된다.

   관상은 탈혼이나 비범한 환시의 체험이 아니라 거룩한 독서의 결과이며, 그리스도께서 신앙을 통하여 우리 마음 속에 거처하신다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신앙 체험이다. 관상은 인간의 노력이나 의지적인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는 하느님의 순수한 선물이다.


7) 실천 actio

   거룩한 독서의 열매는 실천이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을 읽는 일차적인 목적은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독서가 끝나더라도 받아들인 말씀을 계속해서 마음 속에 간직하고 되새겨,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고, 실제로 우리 삶의 인도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말씀을 제대로 듣는다면 그 말씀은 당연히 우리를 실천으로 이끌 것이다. 말씀을 되새기는 동안, 말씀이 내게 힘이 되어 내가 말씀을 이기지 않고 말씀이 나를 이기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렇게 하여 말씀이 나를 통하여 구체화되고 육화되어, 우리는 점점 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된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토착화 작업이 될 수 있다. 하느님의 말씀이 한국 사람인 나를 통하여 한국 땅에서 구체적인 방법으로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5. 베네딕도 규칙과 거룩한 독서


1) 베네딕도 규칙에서 성경의 위치

 
1> 베네딕도 규칙은 `들어라'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규칙의 마지막 장인 73장의 마지막 말은 `도달하게 될 것이다'이다. `들으면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사이의 내용들은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를 담고 있는 셈이다. 라틴어로 쓰여진 책은 보통 책의 첫 단어가 그 책의 제목이 된다. 라틴어는 각 단어마다 격이 있기 때문에 단어의 순서가 바뀌어도 각 단어의 격에 따라 해석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가장 중요한 단어를 문장 앞에 놓고 그것이 그 책의 제목이 되도록 한다(예: 바티칸 공의회문헌의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은 Lumen Gentium, 계시헌장은 Dei Verbum으로 불린다). 베네딕도 규칙이라는 말은 후대에 붙여진 것이고 베네딕도 성인이 붙인 이름은 라틴어 규칙의 첫 말인 `Obsculta(들어라)'인데, 이것은 규칙 머리말의 제목이기도 하고 규칙의 제목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책의 제목은 그 책의 내용을 반영한다. 베네딕도 성인은 수도생활은 결국 들음의 생활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무엇을 듣는가? 스승의 계명, 즉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한다. 베네딕도회 수도생활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간직하고 실천하면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삶이다. 무엇보다도 성경 안에서, 일상 안에서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우리는 다 함께 하느님 나라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2> 머리말 8절은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이미 왔습니다... 하느님의 빛을 향해 눈을 뜨고... 그분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하면서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이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는데, 성경은 `하느님의 빛, 하느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외치시며 훈계하시는 말씀, 그분의 목소리'이다.


3> 머리말의 내용을 종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머리말 21절에서는 우리의 수도생활이 `복음성서의 인도함에 따라' 살아야 하는 삶임을 밝히고 있다. 성경이 바로 수도생활의 인도자이신 것이다.


4> 규칙의 마지막 장인 73장에서는 `가장 올바른 규범인 신•구약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살도록 권고한다. 베네딕도 성인은 자신의 규칙을 초보자를 위한 작은 규칙이라고 한다. 더 큰 규칙은 성경이다.


5>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임을 자처한다. 하느님의 말씀이야말로 참으로 하느님을 찾는 직접적인 장소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람이 될 수 있다.


6> 규칙은 공동기도를 중요시하는데 시편, 독서, 응송... 등 전례의 많은 부분이 성경말씀으로 이루어져 있다.


7> 규칙에서는 거룩한 독서에 하루 2-3시간을 배려하는데, 거룩한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독서 자료는 성경이다.


8> 손님 접대시에도 먼저 성경을 읽어 준다(규칙 53,9).


9> 규칙에는 수많은 성경 인용이 나오는데 이것은 성경이 규칙서의 기본 자료임을 보여준다. 베네딕도 규칙에 가장 많이 인용된 성경은 시편, 마태오 복음, 바오로 서간이다. 규칙에 인용된 성경 구절의 숫자를 확인한 학자들이 있는데 학자들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아퀴나타 뵈크만 수녀는 구약성경에 직접인용 70, 간접인용 34, 총 104번이 나오고, 신약성경에 직접인용 58, 간접인용 101, 총 159번이 나온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신약이 더 많이 나오는데, 신약의 경우는 직접 인용보다 간접 인용이 훨씬 많다. 구약의 경우는 직접 인용이 더 많다. 이것은 베네딕도 성인이 신약성경을 거의 다 외우고 있어서 생각나는 대로 인용했기 때문인 것 같다.


   고대 수도규칙서들은 수도자들이 성경말씀을 공동생활 안에서 구체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해석한 성경 해설서들이라고 할 수 있다. 베네딕도 규칙 역시 성경을 수도생활 안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설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베네딕도 규칙에 나오는 모든 내용들은 성경에 그 기초를 둔다. 성경에 어긋나는 규칙의 가르침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2) 베네딕도 규칙에서 거룩한 독서의 이해를 돕는 용어들

   베네딕도 규칙에는 Lectio Divina라는 말을 단 한번 사용하고 있지만(규칙 48,1) 거룩한 독서를 중요하게 여겨 하루에 2-3시간을 이에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거룩한 독서가 무엇인지, 거룩한 독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설명은 없다. 베네딕도 규칙 안에서의 거룩한 독서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Lectio라는 말과 함께 쓰인 동사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1> legere : 읽다, 모으다

   legere는 lectio의 동사형으로 lectio라는 말과 함께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암브로스 와튼은, 고대 라틴어에서 lectio의 동사형인 legere의 의미는 `모으다, 수확하다, 흩어져 있는 것을 통합하다, 많은 것 중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선택하다, 눈으로 모으다ꡑ의 뜻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lectio는 밭에서 돌을, 나무에서 열매를, 기록된 글에서 말의 의미들을 모으는 행동으로서 이것은 하나의 통합과정이자 질서를 잡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독서는 성경의 글자들에서, 하느님의 말씀과 내게 주시는 의미들을 모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규칙에서 legere는 하느님의 일에서의 독서(규칙 9,5;10,2;11,2.5.9;47,3), 식탁에서의 독서(규칙 38,5.12), 끝기도 전의 독서(규칙 42,3.4)에서 사용되었다.

2> audire : 듣다

   `거룩한 독서를 즐겨 들어라'(규칙 4,55 Lectiones sanctas libenter audire)라고 한다. 읽음과 들음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히 책이 흔하지 않던 옛날에는 각자가 성경을 읽기보다는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읽고 많은 사람들이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베네딕도 규칙이 `들어라'로 시작하고 `도달할 것이다'로 끝나는 것처럼, 수도생활의 기본 자세는 ꡐ듣는 것'이다. 수도생활은 하느님을 들음이요, 거룩한 독서는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수도생활은 그 자체가 하나의 계속적인 독서이며,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이요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는 생활이다. 그것도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듣는 것이다.


3> meditare : 묵상, 되새김, 음송

   `묵상하다'라는 의미를 갖는 이 말은 베네딕도 규칙에는 `공부하다'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는데, 오늘의 묵상과는 달리 마음과 입을 둘 다 사용하는 되새김, 음송과 같은 것이다. 거룩한 독서 시간에도 되새김을 할 수 있는데, 성경구절을 되새김하고 시간전례 때나 일하는 동안 음송할 구절들을 예상해서 암기하기도 한다. 이것은 일종의 공부이다. 그리고 수도승들은 하루 종일, 특히 일을 하는 중에 성경 말씀을 되새기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다.

   베네딕도 규칙에서는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하는 meditare만을 말하고 있고, 일하는 중에 하는 되새김은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도전통과 여러 규칙들, 빠꼬미오와 스승의 규칙에서는 이러한 의미의 meditare(일 중에 하는 되새김)를 찾아볼 수 있다. 베네딕도 규칙에 이 점이 간과된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며, 일하는 동안에 성서의 말씀을 되새기는 것은 수도승 전통 자료들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보완해야 할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규칙 48,23; 58,5에는 `독서하거나 공부한다(legere aut meditare)'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legere는 meditare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앙드레 루프는 선조들이 하였던 meditatio는 하느님의 말씀과 우리 마음 사이의 연결, 즉 같은 말씀을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계속해서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4> aedificare : 세우다, 설립하다, 감화하다

   머리말 33-34의 인용(마태 7,24-25)에서 "나의 말을(Verba mea) 듣고(audit)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자기 집을 지은(aedificavit domum)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한다. 말씀을 경청하고 잘 알아 들을 때에만 제대로 된 집을 세울 수 있다. 독서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하고, 사람을 바로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양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를 읽더라도 그것이 나를 교육할 수 있고, 나의 성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5> memorare, meminere (외우다)

   `마음으로(ex corde) 외우라'는 말이 전례규정에 자주 나온다(규칙 9,10; 10,2; 12,4;13,11). lectio는 입으로만이 아니라 마음과 기억으로 암송되어야 한다. 베네딕도 규칙에 `외운다'라는 말은 대부분의 경우 성경 말씀을 lectio하라는 뜻으로 쓰인다. 외운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 보존하는 것이다. 독서와 암기는 함께 가는 것 같다. 독서를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이 아주 깊이 기억 속에 스며들어 언제든지 필요한 때에 마음에서 흘러나오게 된다.


6> vacare (자유롭다, 여가시간을 가지다)

   이 동사는 규칙에 13번 나오는데, 48장에 `전념하다'라는 뜻으로 8번(규칙 48,4.10.13.14.17.18.22.23) 나온다. 재미있는 것은 이 vacare라는 동사가 같은 48장에서 다섯 번은 `독서에 전념하다'라고 쓰이고, 한 번은 `개인독서나 시편독서에 전념하라'고 쓰인데 비하여 다른 한 번은 `잡담을 즐기다'라는 뜻으로 쓰였으며, 또 한번은 '할 일 없이 노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쓰였다는 점이다.

   vacare라는 동사는 `비어있는, 공허한, 공석인' 뜻을 가지며 자유롭고 매여있지  않은 상태를 나타낸다. 일을하려고 애쓰거나 매여있지 않고, 다른 즐거운 일에 전념하기 위하여 자유로운 여가시간을 갖는 것이다(예: 규칙 43,8 잡담을 즐기다). 베네딕도 성인은 거룩한 독서를 표현하기 위해 이 동사를 사용한다. `독서를 즐기라 (규칙 48,17)'는 것이다.

   베네딕도 성인에게 거룩한 독서는 단순히 힘들기만 한 공부가 아니라, 영적인 유익을 위하여 하느님의 말씀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께 기도 드리기 위해서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 매일의 안식일로도 이해될 수 있다. 이시간은 기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시간이며 영적 재충전의 시간이다. 그래서 `독서를 즐겨 들어라'고 한다. 자유롭고 한가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수도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자유롭고 기쁜 마음으로 경청할 수 있다. 수도원을 `주님께 봉사하는 학원'(규칙 머리말 45)이라고 부른 베네딕도 성인이 수도원을 `독서를 즐기는(vacare lectioni)' 곳으로 본 것은 서로 연관이 있다.

   스승의 규칙과 비교할 때, 길이가 베네딕도 규칙의 3배나 되는 스승의 규칙에는 vacare라는 동사가 8번밖에 나오지 않고, 그 중에서도 lectio와 함께 쓰인 곳은 단 한 군데이다. 이 점에서도 거룩한 독서에 대한 베네딕도 성인의 고유한 영성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베네딕도 성인은 lectio를 아주 무거운 임무가 아니라 일과는 다른 어떤 것, 영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독서는 즐겨야(vacare)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삐 쫓기고 눈에 보이는 일을 생산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유를 의미하거나, 시간이 낭비된다고 느끼게도 할 것이다.

   주일은 주님의 날로 일에서 떠나 주님과 함께 즐기며 지낸다. 베네딕도 성인은 주일에는 모든 이가 독서를 즐기라고 하면서 누군가 무관심하고 게을러서 독서나 공부를 하려고 하지 않으면 일을 시켜 놀지 못하게 하라고 한다(규칙 48,22-23). 일주일 중의 하루인 주일을 주님을 위해 거룩하게 지내야 하는 것처럼,  하루 일과중, 일에서 손을 떼고 주님 안에서 영적 쉼을 갖는 거룩한 독서 시간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스승의 규칙에서는 주일에는 거룩한 독서를 하지 않는다.

        

3) 거룩한 독서를 위한 시간

   빠꼬미오와 카시아노는 거룩한 독서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거룩한 독서를 위한 시간을 따로 배려하지는 않는다. 아우구스티노 규칙은 하루 중 3시간을 거룩한 독서에 배려하고 있고, 그 이후의 규칙서들에서도 독서 시간을 2-3시간 배려하고 있다. 고대 수도자들은 끊임없이 기도하기 위하여 일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기도했다. 3시간 동안 열심히 읽고 외운 성서 말씀들은 하루 종일 일하면서 반복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들으면서 짧은 기도로 응답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아우구스티노 규칙에서는 제 6시와 제 9시 사이에, 하루 중 유일한 식사 시간 전에 독서를 한다. 이 시간은 속이 비어 있어서 하느님께 집중하기 가장 좋은 시간이다. 베네딕도 성인도 독서 시간을 하느님께 집중하기 좋은 시간인 식사 시간 전으로 정하였다. 스승의 규칙에는 여름철 동안 오전에 일을 하고, 오후 식사 후에 독서를 하도록 하였다.

 


   베네딕도 규칙에서 독서(2-3시간)와 시간전례(2-3시간)와 일(6-7시간)의 시간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조화가 깨지고 있고, 일에 비중을 더 두고 있으며, 거룩한 독서를 짐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현대인들은 독서를 즐기거나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 대신에 TV나 컴퓨터로 즐기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거룩한 독서에 대하여 새로운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놀이를 대하는 즐거움과 진지함, 부담스럽거나 의무가 아닌 그러한 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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